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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하나님을 만난 가정
  글쓴이 : 성락신앙     날짜 : 13-08-04 15:14     조회 : 1349    
믿음은 원수의 방해를 넉넉히 소멸시킬 성도의 무기

다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우리 집안에 찾아온 큰 불행

저는 충남 예산 신례원에서 9남매 중 7남으로 태어나 다복한 가정환경에서 장성했습니다. 그러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니 어찌 된 일인지 그 많던 농토와 크고 넓은 우리 집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있었고, 조그만 초가집 한 채와 논밭 약간만 남아 있었습니다.

양계를 시작해 보았으나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서 닭 열 마리를 팔아 여비를 마련했습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부산행 밤기차에 몸을 싣고서 저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낯선 타향 생활은 나를 압박해왔고, 앞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방황하던 끝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마침 사원을 모집하던 흥국상사에 지원해 직장을 얻고서 아내 경향순 집사를 만나 1968년 2월 21일, 영등포 중앙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신혼생활은 단칸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느 새 세 자녀가 태어났으나 그로인해 셋방살이 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가 여럿 있으면 셋방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까지 모시게 되어 우리 일곱 식구는 단칸방에서 매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제 아내는 시부모님이 불편해 하실까봐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고, 저는 그런 아내가 너무나 감사하여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앙심 깊은 형수님의 전도로 시작한 신앙생활

저희 형님은 강릉에 살고 계셨는데 부잣집 손자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살다 객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술로 지내셨습니다. 그러다 1980년 초에 소천했습니다. 형님의 장례식은 강릉 중앙감리교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려는데, 당시 권사였던 형수님께서 “삼촌도 이제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다 형수님의 신앙을 신뢰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형수님은 서울에 가면 김기동 목사님이 계시는 서울성락교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면 삼촌은 신앙생활을 못할 것이라며 꼭 서울성락교회여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습니다. 형수님은 제가 종교생활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온 저는 1980년 1월 13일, 형수님의 당부대로 가족을 이끌고 서울성락교회 3부 예배에 참석하여 성락인으로 등록했습니다. 저희 가족을 전도한 형수님은 모태신앙인으로 불신자 가정으로 시집와 살다가 집안이 파산되고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지자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저희 가정을 사랑하셔서 뿌리 깊은 불교 집안이었던 고향 땅을 떠나게 하시고 당시 강릉 중앙감리교회 권사로 계셨던 형수님을 통하여 우리 가족과 형제들이 구원받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서울성락교회에 처음 나간 날 들었던 설교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1-7절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설교말씀 중에 주보는 버리지 말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몇 번이고 읽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주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 이후 여러 기관을 거쳐 봉사하다가 1986년도에 재정위원으로 봉사하기 시작해 현재 26년째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 가족의 신앙생활은 성숙해졌고 가정생활은 행복해졌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귀신은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의료사고로 심각한 합병증을 겪게 된 아내…병원에서 사형선고 받아

어느 날 아내 다리에 아주 작은 뾰루지가 나서 피부과에 찾아가 주사를 맞고 왔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맞은 것이 부작용을 일으켜 다리가 붓기 시작하더니 온 몸으로 번져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치료를 받고도 상태는 악화되어 합병증까지 찾아왔습니다. 간경화에 당뇨 수치는 300을 넘는 아주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치달았습니다.

배에는 복수가 차서 동산 같이 부풀어 시간마다 관장을 해야 했고, 얼굴은 타다 남은 장작같이 검게 변했으며, 정신은 혼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살려고 하는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면 기도를 했습니다.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이 왜 이렇게 검어졌지?”라고 아내가 나에게 물을 때마다 “아니야. 얼굴이 검기는 왜 검어. 전과 똑같은데.”라고 위로의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병세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어느 날 주치의와 원장이 와서 환자를 바라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당 주치의에게 “제 집사람 상태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오늘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다시 한 번 물었더니 “병의 상태를 10으로 보면 이 환자분은 8까지 왔습니다. 기도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병실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시무언이 귀신 쫓자 정신이 돌아온 아내, 옆 병상의 40대 여성도 시무언이 아내에게서 축사할 때 귀신 떠나는 역사 경험해

저는 이제 세상의 방법으로는 한계가 왔음을 깨닫고 김기동 목사님(현재 서울성락교회 원로감독)께 전화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교회로 전화를 하니 그날따라 목사님께서 중한 회의에 들어가셔야 해서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목사님께 말씀을 드려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약 10분 후에 목사님께서 ‘환자가 더 중하지 회의가 중하냐?’시며 병원으로 출발하셨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도 급한 일 때문에 잠깐 가게에 들렀다가 병원으로 갔더니 김 목사님께서 이미 아내에게서 축사를 마치고 병실에서 나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시며 ‘왜 이렇게 병이 악화될 때까지 있었느냐?’고 말씀하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급히 병실에 들어가 보니 제 집사람은 정신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병실에 있던 자녀들이 하는 말이 김 목사님께서 병실에 들어오시기 바로 전에 귀신이 벌써 알고서 제 아내에게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또 같은 병실에 40대 여성 환자가 중병으로 입원해 있었는데 김 목사님이 제 아내에게서 축사할 때 그 여인이 뒤로 넘어지면서 귀신이 떠나고, 병세가 회복되어 제 아내보다 먼저 퇴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어느 교회 목사님의 사모라는 전언을 들었습니다.

얼마 후에 주치의와 병원장이 들어와서 제 아내를 보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환자가 정신이 돌아왔다며 아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 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숫자를 세니 “이제 됐어. 이제 중환자실로 가지 않아도 되겠어.”라며 환자가 갑자기 좋아졌다면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았더니 아내가 정신이 돌아온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에 주치의와 원장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삼일 후 김 목사님께서 다시 오셔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시자 상태는 더욱 좋아졌고, 그 다음 주에 무사히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아내를 죽음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나 헌금위원으로 주일예배 봉사 재개… 행함 있는 믿음으로 건강을 온전히 되찾아

아내는 병원에서 퇴원했으나 몸은 많이 부어 있어 옷이나 신발이 맞는 것이 없고, 문밖을 출입하기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자기가 하던 헌금위원으로 봉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감사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발로 걸어가라’ 명령하셨을 때 그가 행함으로 깨끗함을 받았던 것처럼,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기에 환경을 초월하여 아내는 그날부터 주일 예배에 성공하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네 명의 문둥이가 행동할 때 함께 하셨고(왕하 7장), 가족과 재산과 건강, 이 모든 것을 다 잃고 심한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서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킨 욥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한 성경의 인물들처럼 저와 제 집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신앙은 현실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에 힘쓰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저희 가정은 이제 행복을 찾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좌경 원로 장로
1940. 10. 충남 예산 출생
1980. 1. 예수영접 서울성락교회 등록
1984. 7. 침례받음 집사
1987. 2. 재정실 수전위원회 회장(현)
            베뢰아아카데미  제17기 수료, 지구장,        교구장 직분
1993. 3. 집사 안수 피택 안수 및 장로 호칭수혜
2004. 6. 교회 사무처리회 회원(건축위원)
2009. 2. 최고영적지도자과정 제4기 수료
2010. 1. 원로장로 성노회 부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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